나자렛 예수에 관한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분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시고 그 분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해 주시고, 악마에게 짓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공동번역, 행 10:38).
1.
한국 선한목자 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책에서 옮겨온 이야기입니다.
미국 뉴욕에 있는 YMCA(예수전도단)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하루는 이 단체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뉴욕에 있는 흑인 빈민가로 노방 전도를 하러 갔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모들이 너무 놀래서, 거칠게 항의를 했는데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뉴욕 흑인 빈민가가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지요. 그 때 아이들을 인솔했던 담당 간사들이 이렇게 설명했다고 합니다.
“정말 위험한 곳이 어디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빈민가에서 전도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텔레비전에 빠져 있는 아이들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 더 위험한 일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뉴욕 흑인 빈민가보다 더 위험한 곳이 집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눈에 보이는 위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인데요. 눈에 보이는 위험에는 민감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에는 둔감한 우리의 모습을 깨닫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입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패닉에 빠졌습니다. 공포 수준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어요.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이 싸움은 절대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피곤해도 싸워야 합니다. 가정이 어려워도 싸워야 하고, 직장이 어려워도 싸워야 합니다. 상대가 아무리 강해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적이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바이러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여러 정책들과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하도 많이 들어서 잘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우리 일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현장 예배를 못 드리게 되니까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 드리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그립다는 것입니다.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지,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서로 기도해 주시고, 서로 격려해 주시고, 서로 연락도 자주 하시길 바랍니다. 음식이 필요하거나, 약품이 필요하시거나, 어떤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해 주세요. 어려운 시기이지만 함께 하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2.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자주 하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역은 안전한가?’라는 것입니다. 매우 중요한 질문이지요.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대비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질문은, 영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은 안녕한가?’ 라는 질문으로 바꿔봐야 할 것 같아요. 코로나바이러스도 위험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악한 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 속에 튀어 나오는 악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령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처럼, 악한 영, 사탄, 마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 주변에는 성령의 역사도 있지만 악령의 역사도 있습니다.
제대로 알아야 잘 싸울 수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악한 영 사이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사람들을 멸망시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요 10:10)”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 옵니다. 사람이 악한 마귀의 권세 아래 놓이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 마가복음 5장에 나옵니다.
거라사인의 지방에 살았던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그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졌습니다. 고랑과 쇠사슬을 묵어놔도 쇠사슬을 끓고 고랑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그는 엄청난 힘의 소유자지만,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살아 있지만, 죽은 자와 함께 사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막 5:1-6). 이 사람의 이야기는 마귀의 권세 아래 사는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엄청난 힘을 가졌지만, 자기 스스로 힘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기술이 발달했지만, 사람들이 자기 욕망대로 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육신적인 욕구만 추구하다가 온갖 병으로 고생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것 같지만, 우울증으로, 중독으로, 정신 분열로 고통 당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는 하나님을 멀리하려고 합니다.
사탄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한 가지 목적 때문입니다.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다 멸망하여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귀의 권세 아래에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악한 영을 지나치게 높이거나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에 대해서 알아야 하지만, 마냥 적에게 겁 먹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담대하게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담대하게 악한 영과 싸워야 합니다.
“그런 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야 4:7)’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이 모든 싸움에서 이미 승리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사탄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마귀에게 짓눌린 자를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이 가이사랴 지방에 살던 더러운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 사람 안에는 군대라는 이름을 가진 귀신이 있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이름도 군대인지 모릅니다. 사람들을 죽이는 군대입니다. 셀수도 없는 사람들을 죽음의 공포 아래서 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귀신을 몰아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멀쩡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마귀 권세아래 있던 자를, 성령의 권세 아래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들어야 하는 복음입니다.
주님의 권세 아래 살게 되면 평안입니다.
어떤 분이 암에 걸리셨다고 합니다. 그 분의 고백이, 암에 걸리니까 암만 묵상하게 되더랍니다. 암에 좋은 음식, 암을 극복하는 방법, 암 치료 잘 하는 사람, 모든 생각에 암. 암 암 암. 하더랍니다. 이렇게 암만 묵상하다보니 마음에 가득 찬 것이 두려움이었다고 해요. 그 분이 암의 권세 아래 놓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이러면 안되겠다 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해요. 그리고 암 대신 하나님을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암 생각이 나면, 의식적으로 하나님 생각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랬더니 생긴 현상이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이 찾아왔다고 고백하십니다. 왜 일까요? 이 분이 성령의 권세 아래 놓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께서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쳐주셨다”는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주님이 승리하셨다. 우리는 마귀의 권세 아래 있지 않다. 우리는 주님의 권세 아래 있다” 고 선포하시길 바랍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너무 묵상하지 마시고,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부른 찬양처럼 우리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 영혼 평안해!’
3.
우리는 영적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바이러스와 싸우는 것처럼 열심히 싸워야 합니다. 온 힘을 다해 싸워야 합니다. 피곤해도 싸워야 합니다. 집 안 사정이 안 좋고, 몸도 아프고 직장도 어렵지만, 영적 전쟁에 힘써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적 전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유기성 목사님은 “사탄의 존재는 인정하나, 사탄의 능력은 무시하라”는 태도로 악한 것과 담대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사탄을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자고 권면합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사탄을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세요.
사실 많은 사람들은 사탄이 신경도 안 씁니다. “저 사람은 자동입니다. 저 사람은 자동으로 내 편입니다.” 이렇게 사탄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사탄을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하셨다고 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예수께 성령과 권세를 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해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들어야 하고, 마음에 새겨야 할 복음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사망의 권세 아래 있지 않고, 주님의 권세 아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로 주님의 권세 아래 있게 하옵소서.
우리로 성령의 권세 아래 있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우리로 하여금 영적 전쟁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죄와 내적인 상처입니다. 죄가 우리 속에 있거나, 마음 속에 상처가 있으면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마귀와 싸울 수 없습니다. 죄를 해결하는 방법은 회개와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배후에서 인간을 망하게 하는 사탄을 꺽는 능력입니다. 복음의 시작은 광야에서 외치는 요한의 소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소리쳤지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우니라’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천국이 가까워졌습니다’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일 3:8).
또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는 길도, 동일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마음의 상처도 성령의 권세 아래 놓이게 되면 치유됩니다.
이를 증거하는 한 자매의 이야기 책을 읽었는데요. 이효진 자매의 [약한 것을 자랑하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효진 자매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기 였을 때 인형처럼 예뻐서 보는 사람마다 안아보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살 때 엄마가 잠시 외출한 사이에 연탄 아궁이에서 끓고 있던 물을 손으로 엎으면서 수증기로 인해 얼굴과 왼손에 3도 화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네 아주머니의 강력한 추천으로 동네 작은 병원에 가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의사가 화상이 너무 심해 살 가망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면서 치료도 하지 않고 방치해 두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는데도 죽지않고 살아 남았습니다. 문제는 치료할 시기를 놓치게 되면서 얼굴 전체에 심한 화상 흔적을 가진 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굴에 화상 자국을 가지고 살아야 온 세월 만큼, 마음에 큰 상처가 남았다고 합니다. 그를 놀리는 아이들이 미웠고, 자기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 의사를 미워하며 살았다고 해요. 나중에는 자기를 고쳐 주지 않는 하나님도 원망스러웠다고 합니다. 대학교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요. 그 사진에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예쁜 여대생들이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절망하며 살던 어느날, 자매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서 였다고 해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요.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 사모님이 찾아오셔서 어머니의 마지막 기도제목을 알려주었다고 해요.
“효진 자매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 함께 기도를 했는데, 자매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셨어요. 어머니의 마지막 기도 제목이에요”
어머님의 유언 때문에 그렇게 교회를 다시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고 주님과 동행하면서 마음의 상처도 치유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효진 자매의 별명은 ‘미스 헤븐’입니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요. 그가 성령의 권세 아래 살게 되면서 생긴 수 많은 변화를 책에서 간증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항상 동행하면서 매일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효진 자매가 지은 시입니다.
제목은 ‘너와 나는 하나’
내 심장에 새겨 놓은 너의 이름이//어찌 이리 아름다운고//어찌 이리 사랑스러운고
너의 심장과 나의 심장이// 하나의 줄로 연결되어// 네가 우니 나도 울고// 네가 웃으니 나도 웃는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야//네가 말하지 않아도//내 심장이 네 마음을 아니//너와 나는 하나로구나
네가 슬플 때//내 심장이 심히 떨리고// 네가 울 때//내 심장에 슬픔이 배어 나오니//
네게 고통을 주는 자를//용서치 아니할 것이요//너를 저주하는 자를//내가 저주하리라
내 사랑하는 자를//멸시하는 자를 내가 멸시하리니//너는 내 것이요//내 피로 값 주고 산 내것이니라.
너를 잃는 것이 나를 잃는 것이요//너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요//너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니//정녕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도 아니하고//내가 너를 떠나지도 아니하리니//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리라.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가 누구의 권세 아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권세 아래 있습니까? 아니면 악한 영 아래 있습니까? 중간은 없습니다. 성령의 권세 아래 있든지, 악한 권세 아래 있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성령의 권세 아래 있기를 거부하면 악한 권세 아래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적과 치열하게 싸우는 이 시간에, 우리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과 싸우고 있습니다. 보다 강력한 적은 악한 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세로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성령과 능력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처럼 온 세상을 두루다니며, 선한 일을 하며, 마귀에 짓눌려 있는 자들에게 주님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찬양하길 원합니다.
(찬양)
보라, 너희는 두려워 말고,
예수, 늘 함께 하시네.
고단한 인생길, 힘겨운 오늘도, 예수 내 마음 아시네
지나간 아픔도 마주할 세상도 예수, 내 마음 아시네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보리, 이 또한 지나가리라
주어진 내 삶의 시간 속에 주의 뜻 알게 하소서
하루를 살아도 기쁨으로 가리, 예수 늘 함께 하시네.
후회도 염려도 온전히 맡기리 늘 예수 함께 하시네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보리, 이 또한 지나가리라.
주어진 내 삶의 시간 속에 주의 뜻 하소서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보리, 이 또한 지나가리라.
주어진 내 삶의 시간 속에 주의 뜻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