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로나19로 인해 온 세상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수 십만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또한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국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그러면서, 죽음에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한 듯 합니다. 모든 것이 마비된 것 같아요. 미국 대부분의 학교는 몇 주 동안 휴교를 선언했고, 남은 학기 일정도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습니다. 쇼핑몰마다 생활 필수품은 동이 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속에 빠져 들어가고 있어서 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어두움에 덮혀 버린 것 같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떠 오른 말씀이 창세기 1장 2절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온 세상이 하나님 손길이 절대로 필요한 상태를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3절)’
혼란스러운 이 땅에, 공허한 사람들의 마음에,
이번 사태를 통해 찬란하신 주님의 빛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
코로나19로 인해 생긴 일들을 살펴보면서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지금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악한 존재와의 전쟁입니다. 그러면서 인간이 참 연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아니 승리할 것입니다. 온 세상이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이 승리로 끝나는 그 날까지, 우리 모두가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 함께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에서 가장 슬퍼하실 분도 주님이십니다. 고통당하시는 백성들의 기도와 애통을 주님이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전쟁을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을 격려했으면 합니다. 나아가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왔으면 합니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있다면 알려주시고, 교회가 물심양면으로 도움도 주었으면 합니다.
저번 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보건당국의 지침에 따라서 우리도 행동하고자 하는데요. 몸이 아프신 분들은 예배에 참석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건강에 대한 염려가 크신 분들도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평강의 주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상황을 지켜봐야 겠지만, 가정 예배나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방법들도 의논해보고자 합니다.
어찌되어든, 마침내 이 나라에 ‘평화’가 선포되는 그 날을 위해, 우리가 힘써 기도하고, 보건당국이나 총회의 지침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둘째, 이 코로나 전쟁을 치루면서 다시 한번 각성되는 것이 있어요. 우리도 영적 전쟁 중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은 인간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이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엡 6:12). 우리의 적이 매우 강력하다는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들과 싸워 이기는 일은 우리의 힘과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또한 성경은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으라고 권면합니다.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온 몸을 가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항상 전투 태세를 하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의 영적 상태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 있는 영적 전쟁에서도 반드시 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외출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손부터 깨끗이 씻는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도 죄라는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있는지, 손을 씻듯이, 샤워를 하듯히, 주님께 회개하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 조짐을 보였을 때, 사람들이 보여준 태도 중 하나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인데요. 미 프로농구 선수인 뤼디 고베르가 기자 회견에서 마이크와 취재진의 녹음기를 일부러 손으로 만지는 장난을 쳤다고 합니다. 자신은 건강한 운동 선수라고 코로나 바이러스 정도는 이길 수 있다고, 자만에 빠진 것입니다. 그의 경솔한 행동의 결과는 며칠 후에 코로나 확진 판정으로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날 농구 경기가 취소되었고, NBA 농구 시합도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뤼디 고베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모습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악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가 …. 닮았다” 라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전염성이 강하지만, 치명적이지 않아. 건강하면 이겨낼 수 있어. 나는 괜찮아!’라고 하면서 죄 가지고 장난치는 저의 모습 말입니다.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는 다른 바이러스에 비해 치명적이지 않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방심하다가 오늘과 같은 사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의 권면글을 우리가 새겨 들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잘 살펴 선한 것은 붙잡고 악한 것은 흉내도 내지 마십시오 (살전 5:21,22).
악한 것은 흉내도 내지 말라!는 것은, 악한 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경솔해서는 안된다는 말로 이해되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 우리가 새겨 들어야 할 권면입니다.
싸움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의 적은 악하고 불의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래야 싸움의 명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존재는 악한 존재인 사탄인 것입니다. 우리는 선하신 분의 편에 서서, 악한 것과 싸워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악한 것과 싸워 이기는 것은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싸움의 명분이 무색해 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적이 악하지 않을 때입니다. 또한 우리의 모습 속에 악을 사랑하는 모습이 있을 때 그렇습니다. 주님의 편이라고 하면서 주님과 반대되는 편에 설 경우에는 주님도 당황스러워 하실 것입니다. 즉 우리는 악한 것을 생각하고, 악한 것을 사랑하고, 악한 것을 전파하면서, 주님이 내 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줄을 잘 서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줄을 대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하나님과 싸운 사람이 있습니다. 애굽 왕 바로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기 위해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리셨는데요. 재앙의 강도가 세질수록 애굽 왕 바로의 마음도 더욱 강팍해 졌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위대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중에 애굽왕 바로도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시늉만 한 것이었는데요. 결국 그는 하나님과 끝까지 싸웠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하나님과 싸운 바로 왕은 자신의 백성들을 홍해에 빠뜨려 죽게 만든, 불행하기 짝이 없는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일로 애굽은 고대 시대의 강대국에서 초라한 나라로 변해 버렸습니다. 우리도 애굽왕 바로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기도하시겠지만, 특심으로 기도했으면 합니다. 이 일을 통해, 우리 모두가 믿음에 대해, 복음에 대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사는 것에 대해 깊이 있게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사도행전 10장에는 베드로와 고넬료가 어떻게 만났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같은 내용들이 반복되고 있는데요. 유대인들이, 기존 신자들이 받아들이기 여러운 일이였기 때문입니다. 어째든 이 두 사람의 만남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요. 두 사람 모두, 왜 만나는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단지 주님이 만나라고 해서 만났을 뿐인데요. 베드로는 고넬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이곳에 보내신 이유를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베드로가 깨달은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을 만왕의 왕이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이방인들을 상대로 한 베드로의 첫번째 설교가 시작됩니다.
고넬료와 그의 친척들은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 나오는 좋은 땅과 같습니다. 즉 그들에게 복음의 씨가 뿌려지면 즉시 싹을 내리고 삼십 배 육십배나 백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베드로 입장에서도 행복하고 신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복음의 씨가 잘 자라는 좋은 땅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우리가 어려운 시대 상황 속에서도 이 곳에 모인 이유는, 악한 일을 도모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님을 높이고, 주님의 말씀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말씀을 받는데 좋은 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의 씨가 심겨지고 자라기 좋은 땅 같은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평의 복음’이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화평은 전쟁이 끝났음을 선포하는 말입니다. 즉 사탄과의 오래된 전쟁에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사건을 통해, 주님이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고 승리하셨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주님이 하신 일은 우리의 모든 막힌 담을 허무신 것입니다.
먼저는 주님의 십자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 막혀 있던 두꺼운 담이 무너졌습니다.
다음으로는, 주님의 십자가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담도 무너졌습니다.
화평의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두꺼운 담도 허물었습니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성도, 주님의 복음은 무너뜨릴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도 죽도록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소식이 복음입니다.
마지막으로, 화평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를 통해, 우리로 만나는 사람들 간에 쌓여 있는 담들이 허물어진다는 선포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 모두가 화평하게 하는 자라는 이름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할 수 없지만,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과 화평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9).
우리가 사모해야 하는 이름이지요! 화평케 하는 자!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김용의의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는 책을 보면,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불행자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먼저는 불신자입니다. 복음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죄인으로 태어나서 생긴 욕심과 두려움 가운데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 가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행복을 더듬어 찾고 찾다가 행복하고 싶어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직장도 잡고 성공도 추구하지만, ‘그 사람 때문에, ‘ 그 문제 때문에’, ‘그 일’로 인생은 행복을 느낄 만큼 만만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또 다른 불행자는 신자입니다. 이들은 복음을 들은 기회는 수없이 있었지만 그것이 자기 것이 되도록 깨닫지 못한느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신앙이 통째로 방황인 사람들인 것입니다. 복음이 실제가 아닌 이론으로만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고 것입니다.
바라기는 복음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복음이 이론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우리도 살고, 우리의 가족도 살 수 있습니다.
4.
코로나 바이러스로, 나라와 나라에 커다란 담들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커다란 담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도 있습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위해서는 필요한 대책이고, 생활의 지혜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려 되는 것은, 이 일로 인해 특정 인종들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길을 가다가 동양인이라고 욕을 먹었다거나 폭행을 당했다는 뉴스를 접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사람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높은 담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어려운 시기를 함께 보내는 동시대 사람들 사이에 동지애 비슷한 것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물리적인 담이 세워기는 하지만, 서로 서로 마음을 열고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모습도 보게 되어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합니다.
지금 유럽에서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가 이탈리아 인데요. 아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외출을 정부에서 강제로 금지할 만큼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발코니에 나와서 이웃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라고 서로를 격려한다고 합니다. 나아가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박수를 치면서 응원하기도 합니다. 상황은 어둡지만, 빛나는 그들의 마음을 보면서 마음이 훈훈해 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모든 일이 끝나고 ‘평화’가 선포되는 그 날에,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들어야 하고, 또한 전해져야 하는 메시지가 오늘 본문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바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평의 복음’입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사태가 갈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예전에 없었던 장벽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의 인터뷰 내용이 제 가슴에 남아 있는데요.
이 분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신 분인데요. 이 분이 하는 말이, 자기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자기 때문에 가족과 자기가 아는 사람들이 아프게 되는 것을 보면, 죄인 같다는 말씀을 하시며 우셨습니다.
“너 때문이다. 너로 인해 생긴 사태다”
이렇게 나라와 나라가, 사람과 사람이 서로 미워하고 관계가 나빠지면서 주님이 허물기 원하셨던 담이 높아질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기우이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우리가 함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만왕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평의 복음이, 이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또한 이 모든 일이 끝난 후에, 사람들 안에 생길 수 있는 막힌 담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허물어지기를
기도했으면 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평화를 내려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아멘!
(찬양)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