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에는 부자 청년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해도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삶을 살아도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자여도 영생을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살 수 있다면 부자만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자여도 영생을 살 수 있을 만큼 부자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살 수 없는 것이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아무리 힘을 써도 우리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은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얻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방법은 하나님 은혜 밖에 없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삶에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지만, 우리 주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되려면 필요한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넘치는 곳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해집니다. 주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에는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해 집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은 주님의 은혜이며, 주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부흥은 주님의 은혜가 우리 각자에게 넘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에 주님의 은혜가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삶에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주님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주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 만이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3:16)’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 받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저도 사랑하십니다. 우리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넓은 지.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높은지. 그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의 선으로는, 우리의 의지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요. 천국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은혜입니다. 부모님의 사랑도 다 깨닫기 어렵습니다. 우주 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 깨닫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감사요, 찬양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가 넘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릴 적에 불렀던 찬양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가는 나라” 라는 찬양입니다.
‘1절: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2절: 벼슬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지식으로 못가요 하나님 나라. 3절: 어여뻐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맘 착해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오늘 본문을 잘 표현해 주는 찬양입니다.
방금 부른 찬양처럼,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닙니다. 영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 (롬 6:23)’ 입니다.
방금 읽은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조금 더 얹어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삶에 넘치도록 생명과 생기를 부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일이라곤 주님을 믿은 것 뿐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린 것은 조금 밖에 없는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넘치고도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찬양이 이것입니다. ‘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4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우리의 고백이고, 찬양이어야 합니다.
2. 주와 복음을 위해.
지난 주에 살펴본 부자 청년은 인간적으로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십계명에 나오는 율법을 어릴 적부터 지켰던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고, 선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출세했고 부자였고, 매우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부자 청년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를 사랑하사, 그의 부족한 면을 채우기 위해 할 일을 주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헌금 많이 해야 영생을 얻는다” 라고 해석하시지 않기 바랍니다. 주님이 그런 의도로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은 좋은것이지만, 헌금 액수와 영생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이 부자 청년에게 명령하신 것은 이렇게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네게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가 삶 속에서 의지하고 있는 것들을 버리고,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그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주님이 보여주시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는 너 자신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주님을 위해, 주님의 복음을 위해 살아보라는 도전입니다.
여러분은 하실 수 있으신가요? 나에게 소중한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를 수 있으신가요? 내 삶 속에 의지하는 것들을 버리고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 수 있으신가요? 내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아닌 주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살 수 있으신지요?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 수 있으신지요?
주님이 제게도 물으십니다. “네게 소중한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를 수 있겠니? 네가 나보다 의지했던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를 수 있겠니?네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 네게 익숙한 삶의 방식을 버리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보겠니? 너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와 복음을 위해 살아보겠니?”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네!’라고 대답하실 수 있으세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부자 청년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슬픈 내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22절)” 우리에게 소중한 것.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손해 보는 것 같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일 것입니다.
29절을 보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집, 형제, 자매, 어머니, 아버지, 자식, 전토’ 입니다. 주님이 이런 것들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어려운 명령인지 모릅니다. 주님이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셨듯이, 그의 제자들에게 그리고우리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있습니다. 30절에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박해를 겸하여 받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손해볼 각오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애매한 고난을 당할 준비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중하고, 익숙한 것을 버리는 것도 어려운데, 박해도 겸해서 받으라고 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부자 청년처럼, 많은 사람들이 슬픈 기색을 하고 근심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근심이 되시나요? 아니면 기쁨으로 주를 따르시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우리는 쉽게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비판하는 그것을, 막상 우리가 스스로 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부자 청년에게 주신 말씀은 고민되고 근심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부자 청년을 비난했다면, 그 잣대를 가지고 우리의 삶도 살펴봐야 합니다. 주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우리도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버릴 수 있겠는가? 주와 복음을 위해서, 가족 관계가 어색해질 수 있는가? 주와 복음을 위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겠는가? 주와 복음을 위해, 좁고 험한 길로 들어설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들입니다.
이런 각오를 한 사람. 실제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에게 주님은 30절에서 놀라운 약속을 해 주십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나의 소중한 것을 버린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아버지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백 배라는 뜻은 우리에게 넘치도록 주신다는 뜻입니다. 주를 믿고,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버리면, 주님이 그 이상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을 약속하십니다. 버리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은 채워주심입니다.
아브라함의 삶이 그랬습니다. 그가 가진 것들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12장 1-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은 주님이 버리라는 것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을 살펴보면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론을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이 얼마나 풍성했는지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릇은 비워 있어야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의 그릇에 있는 세상의 욕심과 나의 의를 비우면, 주님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지금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주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한 자들에게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축복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려움에 빠진 것 같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자들에게는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29절을 다시 보시면,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9절을 잘 보시면, “또는”이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집 또는 형제, 또는 자매, 또는 어머니, 또는 아버지, 또는 자식, 또는 전토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소중하게 여기는 하나를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주님의 응답은 ‘그리고’의 축복입니다. 30절을 보시면 ‘집, 그리고형제, 그리고 자매, 그리고 어머니, 그리고 자식, 그리고 전토. 이 모든 것을 백배로 넘치도록 주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조금을 요구하셨는데, 주님은 우리에게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에게는 힘겨운 일입니다. 우리가 아끼는 것이고, 우리가 소중하게여기는 것이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 일은 고민이 되고 근심이 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은 ‘그리고’로 표현되는 축복입니다.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축복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축복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축복은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축복은 우리가 가진 그릇에 담지 못할 정도로 넘치고 넘치는 축복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기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희생을 보시고,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결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신뢰함으로, 주님 뜻대로 살기로 말입니다.그 길이 우리가 살아갈 길 입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 돌아서지 않겠네’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뒤돌아 서지 않겠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 돌아 서지 않겠네’
주와 복음을 위해, 우리가 버린 것에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더 좋은 것으로, 더 풍성하게 채워주신다고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고백입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찬양입니다.
주님을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어떻게 우리의 어려움 속에서 역사하시는지 지켜보시길 바랍니다. 기대를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가족 관계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직장에서 곤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잠시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와 복음을 위해 어려움을 당했던 수 많은 사람들의 고백은 주님이 주신 은혜가 크고 크다는 것입니다.
존 파이퍼 라는 분은 29-30절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머니 곁에서 얻게 되는 애정과 관심을 포기한다면, 여러분은 향존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백 배의 애정과 관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형제의 따뜻한 형제애를 포기한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께로 부터 수백 배나 더 따뜻한 형제애를 얻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내 집의 편안함을 포기한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집을 소유하신다는 것을 앎에서 나오는 위로와 안전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넉넉하신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풀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작은 희생에도 큰 보상을 내리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신뢰함으로 주님의 뜻대로 사시길 바랍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약간의 불편함과 약간의 희생이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사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로 풍성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영원까지풍성한 삶을 약속하신 분이 우리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길 원하시는 분입니다. 좋으신 그 하나님이 우리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으며, 매일 감사하고 기뻐하며 찬양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