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부자 청년 이야기입니다. 마가복음에는 부자라는 사실만 나와 있는데요.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을 마태복음 19장과 누가복음 18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이 내용들을 정리해 보면, 본문의 주인공은 30대의 청년으로, 높은 관직에 올랐고, 큰 부자라는것입니다. 다시 말해 본문의 청년은 부와 권력을 모두 갖춘 사람입니다. 요즘 말로는 ‘엄친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친아’ 라는 말은 ‘엄마 친구의 아들’의 줄임말인데요. 주로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춘 완벽한 남자를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또한 이 부자 청년의 태도와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겸손하고, 종교적으로 또한 도덕적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십계명의 내용들을 어릴 때부터 다 지켰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간음하기 쉽고, 살인하기 쉽고, 도둑질 하기 쉽고, 거짓 증언하기 쉽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시대에, 이 모든 계명을 지켰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악한 세대에 모범이 될 만한 청년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속에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생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부자 청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원초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또한 이 질문을 가지고 청년이 얼마나 시름했는지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17절입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 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달려와서 꿇어 앉아’ 라는 말에서 우리는 청년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 달려와 꿇어 앉아. 그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질문을 쏟아냅니다. 그가 얼마나 다급하고, 간절한지, 그의 마음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도 이 청년과 같이 영생에 대한 문제에 대한 고민과 다급함이 있는지 스스로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가 쉽게 잊고 사는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또한 이 질문 대신에 우리가 하는 질문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돈을 얻을 수 있을까요?’ ‘내가 무엇을 하여야 건강을 얻을 수 있을까요?’ ‘내가 무엇을 하여야 명예를 얻을 수 있을까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입니다.
물론 이런 질문도 필요하고, 답도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입니다. 영생에 대한 질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질문은, 우리의 영혼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기는, 오늘 이 시간이, 부자 청년의 질문이 나의 질문이 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도덕적으로 선한 생활이 천국 가는 길인가?
부자 청년의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대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십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성실과 최선을 다해 착하게 살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선한 생활을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선하게 살아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켜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자로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아도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겸손해도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실해도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청년에게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청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청년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은 하늘에 보화를 쌓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많은 일을 했지만, 그에게 부족한 한 가지가 영생을 얻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여자가 아이를 얻는 방법과 같습니다. 여자가 아이를 얻는 방법은 결혼해서 남자를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여자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모든 일을 나 혼자 힘으로만 살아왔습니다. 학교 졸업하고 사업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모든 일을 스스로 했습니다. 앞으로도 혼자 힘으로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제 삶의 모토입니다’ 그래서 그는 남자라는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아기를 낳는 일을 완강히 거부하고, 금식하고, 명상하며, 산에 올라가 기도하겠다 라고 선포합니다. 이 여인은 아이를 낳았을까요? 여인은 아이를 못 낳지요. 아무리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도,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아도 영생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청년에게 말씀하셨던 한 가지 부족했던 것은, 십계명에서 이웃에 대한 계명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었습니다. 온 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에그가 순종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23절을 보면,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했습니다. 그가 큰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청년은 그만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을 포기하고, 땅의 것들을 더 사랑했기에 그가 근심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청년에게 지적했던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재물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음란과 정욕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합니다. 십계명이라는 거울에 우리 모습을 비추어 보면, 우리에게 한 가지 이상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모습을 비춰보면, 우리는 부족한 것 투성이 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나요?
24-25절을 보면 주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주님이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보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부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나요? 우리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최선을 다해서 착하게 살면 될까요? 우리의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주님을 따르면 될까요?
주님의 요구는 이런 것과 같습니다.
미국 서부 태평양 해안에 사람들을 세워놓고 한국까지 헤엄쳐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다를 건넌 사람에게 큰 상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는 수영 선수도 있을 것이고, 젊은이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나이드신 분도 있고, 어린아이도 있습니다. 병이 든 분들도 있고, 몸이 불편하신 분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헤엄을 칠 수 있을 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단 몇 분 밖에 헤엄을 칠 수 없었습니다. 차이는 있지만, 공통된 것이 있는데 모두 물에 빠져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미국 서부에서 한국까지 헤엄쳐서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주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보면, 한 가지 이상이 부족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우리가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해도,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기에 우리는 부족한 것 투성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도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6)’ 구원 받을 사람이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에 대한 답은, 무엇을 해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무엇을 해도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불가능한 일보다 더 불가능한 일이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것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빨리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우리 힘으로는, 우리의 선으로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7장 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영생을얻기 위해 자기 힘으로 노력해 본 사람이 하는 탄식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이런 깨달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한 가지 힌트를 우리가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7절)’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쉽게 잊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을 때,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주님을 의지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를 다 사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줍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했다고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우리 힘과 노력으로 무엇을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한 가지가 부족해도 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주님 발 앞에 엎드리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를 의지하는 것처럼, 주님을 믿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가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자신의 영적 파산을 인정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 사람에게 주님이 주시는 복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청년은 부자였고, 많이 배웠고, 출세 했습니다. 또한 종교에 대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부자였습니다. 주님이 들어갈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모습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의만으로 영생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혼자 힘으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없다라고 말입니다. 어린 아이처럼 주님의 의지하는 자에게 천국이 허락된다고 말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찬송가 188장, 만세 반석 열리니 (Rock of Ages, Cleft for Me)라는 찬양을 보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3절. 빈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 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게 되나이다.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주님의 도와주심 바라는 것 뿐입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