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성경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아멘’이라는 말입니다. 어쩌면 아멘 이라는 말은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일 겁니다.
“아멘”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가 하겠습니다 라는 순종을 다짐하는 말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사용됩니다. 시편 89:2, “여호와를 영원히 찬양하라! 아멘! 아멘! 요한계시록 7:12 –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네번째 아멘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 3:14 – 라도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되.
‘아멘’이라는 말은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따라서 아멘은 예배 중에 우리의 마음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멘! 이시지요?!
수요 성경 공부에서 요즘 공부하고 있는 성경은 ‘출애굽기’인데요.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80세가 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나와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자기는 적임자가 아니다 라며 변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은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고,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라고 자신을 평가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출 4:11-12)’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아멘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짧게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읽다가 이렇게 기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주님 저도 이렇게 해 주세요. 주님 저도 모세에게 주신 약속처럼, 제게도 약속해 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2. 닮고 싶은 사람
성경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기도 제목이 생기기도 하지만, 성경을 읽다보면 닮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닮아야 하지요. 그렇지만 우리보다 먼저 신앙 생활을 한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닮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모세가 경험했던 일들, 사도 바울이 경험했던 일들, 사도 베드로가 행하고 경험했던 일들을 보면서 나도 그들과 닮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우리가 역사책을 봐도 그런 느낌이 들지 않나요? 누구처럼 살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고넬료’라는 사람입니다.
3.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이다
오늘 본문에는 고넬료에 대해 몇 가지 특징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라는 사람은 좀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먼저는 그는 로마 군인입니다. 지금 상황은 로마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의 장료가, 점령 당한 나라의 신을 믿고 있었다는 점이 특이해 보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그가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는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최근에 신문 기사와 영화를 통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보곤 합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권력자의 특징 중 하나는 경건한 삶과 거리가 멀다는 점입니다. 그런 영화만 봐서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게 되면 타락하는 모습을 봅니다. 자신은 법을 무시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법을 지킬 것을 강요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나아가 하나님도 무시합니다. 신은 자신이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그런 존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고, 교회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를 소개하면서 성경은 그를 ‘경건’하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권력은 있지만, 타락하지 않고 경건한 사람이다 라고 읽혀졌습니다.
경건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깊이 공경하며 삼가고 엄숙하다’입니다.
성경 사전에는 ‘속념을 끓고서 오로지 하나님께 자기를 맡기는 마음과 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생활, 말씀에 충실하려는 마음, 그 생활까지도 포함한다’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고넬료의 삶을 ‘경건’하다라고 했으니, 이것은 하나님이 그의 삶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넬료는 경건한 척하면서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경건한 척하고, 사람들이 안 볼 때는 아무렇게나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도 경건했다는 말입니다.
고넬료의 이런 태도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멘입니다. 고넬료처럼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아멘’인 삶입니다.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삶이며, 말씀에 충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므로, 아멘인 것입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가족들도 인정합니다. 매일 그의 옆에서 그를 보는 가족이 인정한 것이라면 그의 삶은 진짜 입니다. 나중에 그의 부하들이 베드로를 만나 고넬료에 대해 평가한 내용도 같습니다.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는 사람 (행 10:22)’ 이라고 말합니다. 고넬료의 삶은 사람들도 인정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닮고 싶어하는 부분이기를 바랍니다. 아멘!
고넬료와 같은 지도자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있어야 되겠습니다. 교회에도 이런 지도자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경건한 지도자. 우리가 기도해야할 부분입니다.
당연히 우리의 모습도 고넬료 처럼 경건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경건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벧후 1:5-7)’
경건한 삶을 사시는 우리가 되어야 겠습니다. 아멘!
3. 고넬료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고넬료의 경건한 삶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외하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식민지의 백성들이 섬기는 힘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신이었음을 또한 보여줍니다. 그의 경건한 삶의 비결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경외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여러분이 존경하는 그 누군가를 만난다고 상상해 보시면 됩니다. 여러분이 존경하는 대통령이나 어떤 유명한 사람을 여러분이 만났다고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런 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떨리는 마음이 생기지 않나요? 그런 분과 악수를 하거나 사진이라도 한장 찍을 수 있다면, 아마 그 일이 가문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상상 속 만나는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느낌에 담겨져 있는 것이 바로 경외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보다 더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주님 앞에 우리가 설 것입니다. 그 때의 장면은 상상만 해도, 사실은 두렵고 떨립니다. 그것이 경외라는 단어가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이것은 공포하고는 다른 두려움입니다.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본 내용이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열심히 수척에 적고 있습니다. 공경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죽을까봐 무서워서 그렇게 한다고 뉴스에서는 말합니다. 거룩하신 주님을 만날 때의 느낌은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외했던 고넬료의 삶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그런 그의 모습을 기뻐하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고넬료의 삶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거룩한 꿈입니다. 주님의 백성들이 소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은 주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이기도 합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길 원하네!’ 우리의 찬양이기를 바랍니다.
4. 고넬료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고넬료의 삶은 기도 생활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는 유대인의 습관을 좇아 하루 세번 하나님께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야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고요. 무슨 일이 없어도 꾸준히 기도했던 사람이 바로 고넬료 였습니다.
어떤 분의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거 참 예수 믿는 사람들은 희한해. 외워서 하는 것도 아닐텐데 혼자서 무슨 말을 그렇게 오랫동안 하는지 몰라.
참 희한한 일입니다. 백부장인 고넬료가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아무 일도 없는데 기도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고넬료가 무슨 내용을 기도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그가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야 기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도 들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없어도, 기도의 자리에 나아오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고넬료가 환상으로 보았던 천사가 들려준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들으셨다고 말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아멘! 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야 기도해도 들으십니다. 또한 우리가 아무 일이 없어도 기도해도,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기도해 보십시오. 시간을 정해서 기도해도 좋고, 무슨 일이 있어서 기도해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아무 일도 없는데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5. 고넬료는 구제의 일을 힘써 했던 사람입니다.
또한 고넬료는 구제하는 일에 힘썼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는 구제를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은 그의 권력을 악용해서 모은 재산으로 다른 사람들을 구제했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를 기억하셨다고 말씀하셨기 땜누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로 대표되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기뻐하십니다.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드보가’라는 사람도 주님이 기억하신 바 된 사람입니다. 그가 한 일이 무엇인가요? 과부들을 위해 옷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성경은 경건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서 1:27)’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경건한 삶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은 우리가 했던 작은 선행도 기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관심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너무 사소한 일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억해 주십니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천지를 만드신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기억에 남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그 일을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해야겠습니다.
주님이 고넬료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너의 기도와 구제를 기억한다”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주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실 기억의 흔적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넬료를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경건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도함으로, 구제하면서 이 땅을 살았습니다. 그의 기도와 그의 행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하나님은 그를 기억해 주셨습니다. 저의 삶이 되기를, 또한 여러분의 삶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기억된 바 된 사람들이 우리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