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에서 가장 흔한 말이 ‘사랑’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사랑이 필요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사랑이 필요하고, 우리 모두는 사랑에 목 말라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성경에서도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이웃을 내 몸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무엇이냐 라고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 않습니다.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사랑하면 자동적으로 또 오르는 성경구절이 고전 13장입니다. 고전 13장은 사랑의 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전 13장을 읽어보면 사랑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지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사랑이라는 감정과는 매우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로 모은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런데 이 말씀을 읽고, 나는 얼마나 사랑을 하는지 생각해 보면 참담하기 그지 없습니다. 특히 사랑이라는 단어 대신에 자기 이름을 넣어보면 단번에 사랑 없음이 들어납니다.
“호진이는 오래 참습니다. 호진이는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습니다. 호진이는 자랑하지 아니합니다. 호진이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호진이는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
이렇게 사랑이라는 단어 대신에 자기 이름을 넣어서 읽다보면 부끄럽습니다. 사랑과 제가 얼마나 거리가 먼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주 듣는 이야기 중에 ‘이기적이다’라는 말입니다. 예전에는 ‘이 기적’ 같은 사람이라고 이라고 스스로 우겼지만, 지금은 제가 이기적이라는 말이 맞다고 수긍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되고 보니까 더욱 뼈저리게 맞는 말입니다. 사랑하고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만 제게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때 그래도 고전 13장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졌으면 좋겠습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요한 1서 3장 14절)’
우리가 사랑에 대해 조금 더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우리가 행해야 하는 것이 사랑임을 알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2.
2018년도에 우리에게 도전이 되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는 것이 ‘사랑’인데, 우리에게 그런 행위가 있는지, 이를 위해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랑하며 사는 것일까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하기를 원하실까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말씀대로 사는 것일까요?
이런 고민을 가지고 사랑에 대해 함께 묵상해 보고,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들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사랑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지식은 우리의 행위와 연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전 13장에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어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 1서 4장 7,8절)’
고전 13장에 사랑 대신에 하나님을 넣으면, 사랑을 설명하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것을 또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하나님은 온유하십니다. 하나님은 시기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랑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내지 아니하시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무례하지 않으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예의를 지키시는 분이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마음 문을 억지로 여시지 않으시고, 문만 두드리고 가만히 기다리시는 이유입니다. 우리 스스로 마음 문을 열 때까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문 밖에 서서 기다리시는 이유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은 어울리지 않는 옷 같지만, 하나님에게는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유입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사랑에 대해 묵상하면서,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시기를 바랍니다.
2018년에 여러분과 제게 도전이 되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목사인 제가 사랑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사랑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정에서 사랑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교회에서 사랑의 사람이 되기시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처해 있는 곳에서 여러분이 사랑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에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한 1서 4장 12절)’
3.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먼저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받은 사랑을 가지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부모가 자녀를 먼저 사랑해 주는 것이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일하게 사랑이 없는 우리를 주님이 먼저 사랑해 주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 사랑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 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다고요? 하나님이 우리를 ‘이 같이’ 사랑하셨습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 1서 4:10)”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가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게 하는 배경입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권면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너는 사랑 받는 존재란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사랑을 할 능력이 아주 조금 밖에 없어 보입니다. 또한 우리는 사랑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닮아 하나님처럼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욕심만 남으면 안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게 남아야 하는 것은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런 기도가 우리에게 있었으면 합니다.
어느 학교에서 이런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두 개의 화분을 각 교실에 놓고서 아이들에게 힘들고 짜증이 나면 한 화분에게는 저주와 욕설을 퍼 부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화분에는 칭찬과 사랑을 해 주라고 햇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예상하신 것처럼 사랑을 많이 받은 식물은 무럭 무럭 잘 자랐습니다. 반면 저주와 욕설을 먹고 자란 화분의 나무는 삐뚤삐뚤 거리며 자랐다고 합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납니다. 우리 아이들도 축복 많이 해 주시고 사랑도 많이 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신 것처럼,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먼저 사랑해 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도 건강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4.
올 한 해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고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일 저녁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모두가 용기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재능에 따라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믿어주신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처럼 우리 모두가 변화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우리가 다 알 수 없지만, 조금이나마 깨닫는 올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악 가운데 있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시몬의 집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랍비요, 스승이요. 위대한 설교자이신 예수께서 시몬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에 방문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습니다. 죄인으로 낙인이 찍힌 한 사람입니다. 거룩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 여자는 눈물을 쏟으면서 예수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다 다 붓어 버렸습니다. 시몬은 자신의 집에 온 손님 대접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죄인인 여자는 눈물로 예수의 발을 씻었고, 향유를 쏟아 부어 예수의 죽음을 예비했습니다. 시몬이 여자를 비난하지만, 예수께서는 여자를 칭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여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 먼저 사랑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톨스토이가 쓴 작품 중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습니다. 예전에 한 번 읽었는데, 눈에 띄어서 다시 읽어봤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설은 한 구두 수선공과 그가 도왔던 미하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하일은 천사인데, 하나님께 벌을 받아 잠시 인간이 된 인물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이 미하일이 내신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되어 다시 하나님의 천사가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하일 천사에게 냈던 세 가지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인간 안에 무엇이 있는가?
둘째.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셋째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미하일이 사람들과 살면서 깨달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 안에 있는 것은 ‘사랑이다’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내일 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한 치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오래 살지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셋째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에, 미하일이 깨달은 것은, 사람은 사랑으로 인하여 산다는 것입니다.
미하일이 고백입니다.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모든 사람 각자는 자신의 일을 걱정하고 애씀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 실은 오직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찬 있는 자는 하나님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람 내부에 계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가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톨스토이가 깨달은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깨달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은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특히나도, 부모를 잃은 간난아이는 어떻게 살 수 있는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 수 있는가?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 수 있는가? 실의에 빠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 수 있는가?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 수 있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은 사랑으로 인하여 살 수 있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면 우리도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018년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되는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