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에 있었던 일입니다. 몇 년동안 쓰던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려서 핸드폰 액정이 깨져 버렸습니다. 예전에도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린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별 일 없었는데요.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던 것입니다. 핸드폰 액정이 깨지니까, 다시 깨닫게 된 것이, 이제는 휴대폰 없이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핸드폰이 없는 세상은, 불편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즉시, 새로운 핸드폰을 샀습니다. 제 아내는 즉시, 핸드폰 액정을 보호할 수 있는 도구를 구입해 주었습니다. 핸드폰 외관과 액정을 보호할 수 있도록, 완전 무장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이 생기시지 않나요? 왜 핸드폰 액정이 깨지기 전에 미리 좀 완전무장을 시키지 그랬느냐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변명을 드리자면, 제가 핸드폰을 무장 시키지 않은 이유는, 제가 핸드폰을 떨어뜨려서 액정을 깰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 자신을 너무 믿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야!’ 라고 장담했던, 제 오만한 마음이 깨진 것입니다. 물론 핸드폰은 사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여러 면에서 손해를 입은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일은 조심해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는 것입니다. 잘 준비하고, 무장도 하고, 전신 갑옷을 입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달하게 된 결론은, 자기 자신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을거야, 유혹에 빠지지 않을거야, 이 까짓 어려움은 견뎌낼 수 있을거야’
그랬는데, 핸드폰 액정이 깨진 것입니다. 완전무장을 하고 났더니, 염려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핸드폰은 아주 오랫동안 사용할 것 같아요. 배터리가 고장 날 때까지 쓸 것 같습니다. ㅎㅎ
2.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예수님 공생애의 마지막 한 주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고난 주간이 시작됩니다. 이 고난 주간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 중 하나가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를 묵상하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조금 있다가 함께 부를 찬양인데요. ‘만왕의 왕 내 주께서’ 라는 찬송가의 가사 후렴은 이렇습니다.
후렴: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십자가를 묵상하다가, 이 찬양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작곡자가 말하는 ‘나의 맘에 큰 고통’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그것을 알려면, 가사를 살펴봐야 겠지요?
1절.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 당했나 이 벌레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렀네.
2절. 주 십자가 못 박힘은 속죄함 아닌가 그 긍휼함과 큰 은혜 말할 수 없도다.
3절. 늘 울어도 그 큰 은혜 다 갚을 수 없네 나 주님께 몸 바쳐서 주의 일 힘쓰리.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의 고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속죄함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은 죄인된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큰 은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찬양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작곡자처럼,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라는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었으면 합니다.
두 번째로,우리가 고난 주간에 우리가 할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오랫동안 같은 기도를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같은 내용의 기도를 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보여줍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지는 십자가가 아니라,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지셔야 하는 십자가였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중차대한 일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이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할 것을 부탁하십니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그리고는, 예수님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내용을 요약한 것이 39절에 나옵니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주십시오’
누가복음에 보면, 하늘의 천사가 내려와 주님을 도왔다가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치열하게 기도했는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눅 22:44).
이는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의 무게가 얼마나 크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3.
또한 예수님의 기도가 보여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깨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깨어 있는 사람만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자고 있으면, 졸고 있으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자고 있었을까요?
먼저 그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정말로 몰랐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자신들은 절대로 예수님을 버리지 않을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음이 깨지지 않을 자신감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바닥에 떨어져도 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우리에게 그런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바닥에 제대로 떨어지면, 완전히 박살이 날 수 있는데,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잠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을 보면서 예수님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십니다. 깨어있어야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실 십자가의 무게와 의미를 아시기에 기도하신 것입니다. 앞으로 자신과 제자들에게 닥치게 올 일들로, 온 몸과 마음이 산산 조각이 날 제자들을 미리 보시며, 예수님이 고민하고 슬퍼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무엇인가요?
삶에서 고민되고 슬픈 일이 있을 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기도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니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해야 하는 것이 기도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습니다. 바닥에 떨어져 액정이 깨지게 될지 어떻게 알아요.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 전에 해 야 할 일은, 무장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무장을 하는 것은, 깨어서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4.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하셨던 기도는 정직한 기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직하게 드리는 기도.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임을 예수님은 보여주십니다. 내 모습 그대로, 상한대로, 깨어진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기도입니다.
깨어 있어야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기에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세계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긍정적인 자신감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깨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육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여러 번 제자들에게 권했지만, 제자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기도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변명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이 새벽 기도에 갈려고 자명종을 맞춰 놨습니다. 그런데 너무 피곤해서 자명종이 울렸지만,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한 쪽 마음에 하나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짧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죄송해요. 제가 너무 피곤해서 새벽 기도 못 나가겠어요’ 그리고 나니까, 마음이 좀 가벼워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달디단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저도 이런 적이 있어서 무척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와 어떤 분에게 뭐라고 말씀 하실까요? 아마도 하나님이 이렇게 대답하셨을 겁니다. ‘나는 괜찮다. 그런데 나는 네가 걱정이다’라고요.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시지만, 기도는 우리를 위해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는 뭘까요?
깨어 기도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깨어서 하나님께 기도했던 예수님은 십자가를 기꺼이 지셨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다 도망쳐 버렸습니다. 기도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전에 예수님께 호언장담을 하면서 했던 말이 있습니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이 진심을 지키기 못했습니다. 그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기간의 마지막 주간인 고난 주간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이 닥쳐 오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힘든 일이 찾아오면 깨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짊어져야 할 각자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깨어 기도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가 깨어 있는 것입니다. 이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깨어 기도해야 시험이 들지 않습니다. 깨어 기도해야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5.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어떤 자신감이 있는 듯 합니다. 물론, 자신감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자신감이 충만하면 마음이 깨어질 수 있습니다. 핸드폰도 무장을 합니다. 액정이 깨지지 않도록, 커버를 씌웁니다. 깨어서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깨어지지 쉬운 존재라고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 바이러스가 침투해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현락한 화면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깨어서 기도하는 일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의 자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고난 주간, 한 시간 기도를 해 보시면 어떨까요?
주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여라.’
그리고 기도에도 때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45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자고 쉬라’ 이 말은 기도할 때가 지났다는 말입니다.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핸드폰 액정이 깨지고 난 후에 커버를 사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핸드폰 액정이 깨지기 전에 커버를 해야 합니다. 물론 핸드폰이야 깨지면 다시 사면 그만 입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대체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조금 힘들고 피곤하더라도 기도해야, 어려움이 닥쳐도 믿음이 깨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지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음에는 기도하고 싶지만 육신이 약해서 기도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도 인정해 주신 것으로 종종 해석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압니다. 마음이 그렇게 원하는데, 육신이 약해서 정말 못하는 걸까요? 아닐걸요. 몸이 약해도 마음이 원하면 기어코 하는 것이 우리 인간 아닌가요? 저는 그렇더라구요. 몸이 약해도 마음이 원하면 어떻게든 하려고 하는 게 저더라구요. 그러니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기도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또한 기도하는 것이 마음만으로, 육신의 강함으로 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는 것도 말해줍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하는 것이 또한 기도입니다. 바쁜데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고, 초조한데 하나님께 기도할 마음이 생긴다는 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증거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온 힘을 다해 기도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꺽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늘 보좌를 움직이기 위해 하는 기도가 아니라, 내 마음의 보좌를 하나님께 내어드리기 위한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도를 하기 위해 예수님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고난 주간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이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깨어서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깨어 기도해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깨어 기도해야 마음이 깨지지 않습니다. 깨어 기도해야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복된 한 주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