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실력이 늘었는지 확인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시험’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시험은 학생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시험의 목적은 ‘실력 검증과 성장’에 있습니다.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은 시험 본다는 말만 들어도 긴장합니다. 시험을 본다는 자체가 스트레스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시험을 본다고 하면 신이 난 학생들도 가끔 있습니다. 시험 볼 준비가 다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시험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시험은 어떨까요?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시험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그들의 실력을 점검하고, 그들의 믿음을 점검하고, 그들을 훈련시키시기 위한 것일까요?
예수님이 빌립을 시험하시기 위해 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이 사람들은 남자만 오천명 쯤 되는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에는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하셨습니다. .
먹을 것을 살 곳을 묻는 것도 시험이지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것도 시험입니다. 얼핏보기에 앞 문제는 그래도 쉬운 것 같습니다. 장소만 알면 되니까요. 그러나, 두 번째 문제는 어렵습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수 천명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라고 하셨으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첫번째 시험 문제도 생각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중에서 빌립이라는 사람에게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라고 물으신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객관식으로 준비해 봤습니다.
1) 빌립이 이 지역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빌립은 갈릴리 출신입니다.
2) 빌립이 이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는 재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3) 이런 이벤트에서 돈 계산을 가장 잘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4) 위의 답 중에는 답이 없다.
물론 나중에, 오늘 본문을 예수님 직강으로 듣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그렇지만,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빌립에게 물으신 것은 그가 이 지역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혹시 빌립이 예수님이 물으신 것을 알았다고 해도, 갑자기 그 많은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거의 즉흥적으로 사람들에게 식사 대접을 할 계획을 밝히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이 있다고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마을에 가서 남자만 오 천명 분의 떡과 물고기를 사온다고 가정해 보면 압니다. 정말 많은 음식인데, 그 음식의 무게며 이동 시간이 엄청날 것입니다. 지금처럼 기술이 발달하고, 교통이 발달했다고 해도, 오천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준비를 철저히 하고, 엄청난 실력이 있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일을 예수님이 하라고 하신 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시험은 빌립의 지리 감각이나 계산 능력을 묻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빌립을 시험하십니다.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그리고 예수님이 동일하게 우리를 시험하셨다면 우리는 그 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을까요?
어떤 분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에 아멘하면서, 5천명을 먹일 사람이 되라고 하신 것으로 해석하십니다. 참 좋고 재미있는 적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빌립에게 지금 시험하시는 것은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시험은 참 어렵습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도 시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험은 참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수 많은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갈까 말까, 줄까 말까, 할까 말까’
만약 예수님의 제자들이 무엇이든 일할 준비가 되어 있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실력이 생기고, 재력과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예수님이 빌립을 시험하셨다면 어떨까요? 빌립과 제자들은 예수님의 시험을 통과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시험하실 때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일도 비슷할 듯 합니다. 말로다 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삶 가운데 있습니다. 통장 잔고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 먹고 살기도 빠듯합니다. 허리가 휠 정도입니다. 내일 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느닥없이 오천명 먹일 준비를 하라고 하십니다. 아니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정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도 먹을 게 없는데, 다른 사람들 먹이라니요? 예수님이 우리 사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시는 것 아닌가요? 라고 말씀드릴 뻔 했을 겁니다.
예수님의 시험은 항상 이렇습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능력 밖에 있는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 때,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실 수 있으세요?
예수님이 빌립을 시험하신 이유는, 그가 순종할 것을 기대하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시키신 일은 빌립의 능력 밖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이걸 빌립이 믿었다면 그의 대답은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빌립을 시험하신 이유는, 빌립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빌립을 시험하시면서 했던 질문에는 “내가 누군지 아느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빌립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다면, 이번 문제는 어쩌면 쉽게 풀리는 문제입니다.
빌립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었다면, 예수님이 질문하셨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했을까요?
제 생각에는,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은 우리 능력 밖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을 것 같습니다. .
예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우리를 시험하실 때 우리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생각해야 합니다.
2.
창세기 22장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길,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보인 반응이 놀랍습니다. 그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아들과 함께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잡아서 죽인 후에 번제로 드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가 급하게 그를 막아섰고, 이삭대신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을 대신 번제로 드립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내용을 보면, 정말 이상합니다. 아브라함이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정말 어렵게 얻은 아들이 이삭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시험은 아브라함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녀를 번제로 드리는 일은 우상을 섬기는 이교도들이나 했던 일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시키기는 하나님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실은 아브라함의 행동이 더욱 이상합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일이라도 이상한 일이면 질문이라도 해야 할텐데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2장을 읽으면, 하나님과 아브라함 모두 참 이해하기가 안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낸 시험이 ‘내가 누군지 아느냐’라는 문제로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내시는 시험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신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아브라함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 같은 자기를 통해서 이삭이라는 아들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7-19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데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았을 뿐 아니라, 그가 믿는대로 하나님께 반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절대로 못할 것 같은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통장 잔고가 줄어들고, 경제는 침체가 되고 있으며, 내일 일은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써야 할 돈을 많아지고, 수입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희가 먹을 주라’라고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통장 잔고 대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를 살려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믿어야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가 한 일은 아이가 내어 놓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가져다 드린 것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 빌립에게 내신 시험 문제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안드레가 믿은 것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믿은 것입니다. 이 믿음이 확인되자, 예수님은 오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갑자기 오 천명을 먹일 능력이 없습니다.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시간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내일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이 교회의 주인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시험하실 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하나님이신가요?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나요?
예수께서 우리의 소망이 되시나요?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동네에 가서 밥을 사 먹게 하소서’라고 하는 너무나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답 대신에,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기를 바라십니다.
‘주여, 우리를 먹이소서’
그러면,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항상 풍족합니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마 14:19-21)’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풍족합니다.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이렇게 풍성하게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실 때, 우리도 안드레처럼,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고 행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