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장에는 세례 요한의 죽음,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의 옷자락만 닿아도 병이 나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세례요한와 베드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세례요한 - 기독교인들의 사회 참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정치인들이 잘못하면 그것을 지적해야 하는가? 아니면 기독교인들은 침묵해야 하는가? 세례 요한은 죽을 줄 알면서 왕의 잘못을 지적했는가? 좀 더 살아서 회개의 복음을 전했다면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들이 있었다.
세례 요한의 역할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였다. 그는 그 직분에 충실했던 사람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졌다'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지, 단순히 그가 용기가 있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는, 우리가 판단할 부분이 아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각자의 부르심에 따라 살면 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설교와 일치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우리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다르다. 주님이 하라고 하시면,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자세이다.
악의 문제? 악이란 무엇인가? 선하신 하나님이 악을 만드셨는가?
이 질문은 수 천년동안 내려온 것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악을 만드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어둠을 만드신 적이 없다. 하나님은 빛을 만드신 분이고, 빛이시다. 악이란 하나님이 없는 상태이다. 악이란 하나님의 빛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 속에서도 악한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하나님의 빛이 없어지면 그렇게 된다. 하나님이 없는 상태,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악'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선하다'고 하는 것조차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할 수' 있다. 기준이 없으면 악이라는 것은 없어진다. 하나님이 기준이며, 하나님이 빛으로 나타나시자, 어둠이 사라졌다.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선한 것이다.
베드로 - 물 위를 걸으시는 주님을 보고 물위를 걸었다. 주님을 보면 물 위를 걸을 수 있지만, 주위 환경을 보면 물에 빠진다. 어려움이 닥쳐 왔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환경을 보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문제 속으로 빠질 수 밖에 없다. 머리가 아파지고, 걱정하고 근심하게 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실수에도, 우리의 연약함에도 우리의 손을 바로 잡아 주시는 분이시다. 아멘!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에게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주님을 바라보면 초자연적인 일들이 일어나지만,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물에 빠지는 자연인이 된다.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도 우리의 환경을 초월하며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고 살 수 있다.
주님을 바라보자. 어려움에 빠질 때 주님을 부르자! 그러면 주님이 우리의 손을 잡아주신다.
세례요한와 베드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세례요한 - 기독교인들의 사회 참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정치인들이 잘못하면 그것을 지적해야 하는가? 아니면 기독교인들은 침묵해야 하는가? 세례 요한은 죽을 줄 알면서 왕의 잘못을 지적했는가? 좀 더 살아서 회개의 복음을 전했다면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들이 있었다.
세례 요한의 역할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였다. 그는 그 직분에 충실했던 사람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졌다'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지, 단순히 그가 용기가 있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는, 우리가 판단할 부분이 아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각자의 부르심에 따라 살면 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설교와 일치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우리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다르다. 주님이 하라고 하시면,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자세이다.
악의 문제? 악이란 무엇인가? 선하신 하나님이 악을 만드셨는가?
이 질문은 수 천년동안 내려온 것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악을 만드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어둠을 만드신 적이 없다. 하나님은 빛을 만드신 분이고, 빛이시다. 악이란 하나님이 없는 상태이다. 악이란 하나님의 빛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 속에서도 악한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하나님의 빛이 없어지면 그렇게 된다. 하나님이 없는 상태,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악'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선하다'고 하는 것조차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할 수' 있다. 기준이 없으면 악이라는 것은 없어진다. 하나님이 기준이며, 하나님이 빛으로 나타나시자, 어둠이 사라졌다.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선한 것이다.
베드로 - 물 위를 걸으시는 주님을 보고 물위를 걸었다. 주님을 보면 물 위를 걸을 수 있지만, 주위 환경을 보면 물에 빠진다. 어려움이 닥쳐 왔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환경을 보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문제 속으로 빠질 수 밖에 없다. 머리가 아파지고, 걱정하고 근심하게 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실수에도, 우리의 연약함에도 우리의 손을 바로 잡아 주시는 분이시다. 아멘!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에게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주님을 바라보면 초자연적인 일들이 일어나지만,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물에 빠지는 자연인이 된다.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도 우리의 환경을 초월하며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고 살 수 있다.
주님을 바라보자. 어려움에 빠질 때 주님을 부르자! 그러면 주님이 우리의 손을 잡아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