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읽기를 마치고, 출애굽기를 읽기 시작했다. 저번 주일에는 출애굽기 3장을 읽었다. 출애굽기 3장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을 담고 있다.
40년의 애굽에서의 삶과 40년의 미디안 광야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모세가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나눴습니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는, 또는 모세의 눈에는 잊혀진 시간이나 낭비되는 시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시간에는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우리의 삶에서도 모세와 같이 미디안 광야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시간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사명을 주시는 장면을 통해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가나안 땅을 주시면서, 그 땅에 있는 사람들을 전멸 시키라는 명령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는 이미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서 살려면, 전쟁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곳을 차지하라고 하신다.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십계명에 보면 하나님은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리신 명령은 살인하라는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분이 살인을 해야 하는 전쟁을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 부분은 해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괜찮고, 어떤 경우에는 안된단 말인가. 살인을 해도 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부분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누가 선과 악의 기준이냐는 것이다.
내가 기준이 되면 하나님은 잘못 하신 면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실수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의 논리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삶의 잣대로 보면, 하나님도 잘못하신 부분이 많다. 성경이 말이 안되는 이유는 내가 하나님 보다 높은 위치에 앉아 있어서다. 내가 세상의 기준인 사람은 아무도 못 말린다. 하나님보다 높으신 분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단 말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선과 악은 매우 어려운 주제이지만 간단한 주제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선악의 기준이 되면 그렇다.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면 옳은 것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은 옳은 일이다. 하나님이 틀리다고 하면 틀린 것이다. 하나님이 기준이 되면 선악의 문제는 해결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판단하시는데, 피조물이 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선과 악의 기준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되시면, 선과 악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인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선과 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할 수 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선과 악의 기준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면이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한 산파(출 1장)는 하나님이 옳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셨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무조건 옳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면 옳은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다고 했을 때, 절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반대했다. 그러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나라'라고 하셨다. 베드로 입장에서는 스승인 예수님을 생각해서 한 말일 수도 있는데, 주님은 그 마음을 악하다고 하신 것이다. 베드로의 입장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항상 옳다. 인간의 욕심이 들어 있는 베드로의 말은 하나님의 계획을 막는 것이었기 때문에, 비록 스승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에게 있었다고 할지라도, 악한 것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주님이 깨닫게 하시면 우리 삶에 있었던 선과 악에 대한 고민이 분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빛이 되신 주님께 나아갈 때 우리 삶에도 분명하게 비춰질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면서 하셨던 말씀이 있다.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네 신을 벗으라'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자는 신을 벗어야 한다. 자기의 삶의 흔적들, 자기가 가진 것들, 세상의 기준들, 이런 것들을 벗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이 옳다고 인정하려면 우리의 신을 벗어야 한다. 우리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뀌기 위해서다.
우리의 신을 벗어야 한다. 우리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40년의 애굽에서의 삶과 40년의 미디안 광야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모세가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나눴습니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는, 또는 모세의 눈에는 잊혀진 시간이나 낭비되는 시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시간에는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우리의 삶에서도 모세와 같이 미디안 광야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시간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사명을 주시는 장면을 통해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가나안 땅을 주시면서, 그 땅에 있는 사람들을 전멸 시키라는 명령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는 이미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서 살려면, 전쟁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곳을 차지하라고 하신다.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십계명에 보면 하나님은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리신 명령은 살인하라는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분이 살인을 해야 하는 전쟁을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 부분은 해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괜찮고, 어떤 경우에는 안된단 말인가. 살인을 해도 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부분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누가 선과 악의 기준이냐는 것이다.
내가 기준이 되면 하나님은 잘못 하신 면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실수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의 논리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삶의 잣대로 보면, 하나님도 잘못하신 부분이 많다. 성경이 말이 안되는 이유는 내가 하나님 보다 높은 위치에 앉아 있어서다. 내가 세상의 기준인 사람은 아무도 못 말린다. 하나님보다 높으신 분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단 말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선과 악은 매우 어려운 주제이지만 간단한 주제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선악의 기준이 되면 그렇다.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면 옳은 것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은 옳은 일이다. 하나님이 틀리다고 하면 틀린 것이다. 하나님이 기준이 되면 선악의 문제는 해결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판단하시는데, 피조물이 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선과 악의 기준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되시면, 선과 악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인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선과 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할 수 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선과 악의 기준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면이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한 산파(출 1장)는 하나님이 옳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셨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무조건 옳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면 옳은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다고 했을 때, 절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반대했다. 그러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나라'라고 하셨다. 베드로 입장에서는 스승인 예수님을 생각해서 한 말일 수도 있는데, 주님은 그 마음을 악하다고 하신 것이다. 베드로의 입장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항상 옳다. 인간의 욕심이 들어 있는 베드로의 말은 하나님의 계획을 막는 것이었기 때문에, 비록 스승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에게 있었다고 할지라도, 악한 것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주님이 깨닫게 하시면 우리 삶에 있었던 선과 악에 대한 고민이 분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빛이 되신 주님께 나아갈 때 우리 삶에도 분명하게 비춰질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면서 하셨던 말씀이 있다.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네 신을 벗으라'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자는 신을 벗어야 한다. 자기의 삶의 흔적들, 자기가 가진 것들, 세상의 기준들, 이런 것들을 벗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이 옳다고 인정하려면 우리의 신을 벗어야 한다. 우리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뀌기 위해서다.
우리의 신을 벗어야 한다. 우리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