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장은 예수님의 표적에 대한 논쟁, 바리새인의 누룩에 대해, 시몬 베드로의 고백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16장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적을 요구하는 바리새인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
(2) 오병이어 기적으로 5천명을 먹이신 기적과 떡 일곱개로 4천명을 먹이신 사건.
(3) 베드로의 고백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이다. 이 고백에 주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 천국의 열쇠를 준다고 하신 일.
(4)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후 죽임을 당하셨다가 제 삼일에 살아나신 일들.
베드로의 반응과 예수님의 반응. 예수님의 역설에 대한 나눔에 대해 이야기가 나누어져 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기 원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주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수 많은 표적을 보면서 여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어떤 기적을 보아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기적을 보았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기적을 경험했다고 믿음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선물인 셈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아도 믿음이 생기는 않는 세대. 그 세대의 마음은 악하고 음란한 것이다. 믿지 않으려고 작정한 사람에게는 어떤 기적도 믿음을 주지 못한다.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을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오천명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천명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행하신 기적이다. 예수님의 주님의 능력을 잊어버린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신지를 말씀해 주신다. 또한 이 말씀은 주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자손 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배불리 먹이실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적인 배 고픔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시는 분이 에수님이라는 내용이기도 하다. 주님의 말씀은 온 세상 사람을 다 먹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에 뭔가를 덧붙이기를 원한다. 예수 믿으면 성공하고, 예수 믿으면 건강하고.. 예수 믿으면 모든 일이 다 잘 풀린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이것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두고 하신 누룩이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 복음이다. 주님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른가?
베드로의 고백은 주님의 칭찬을 이끌어낸다. 시몬 베드로에게 주님은 '천국의 열쇠'를 맡기시는 복을 주셨다. 그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고, 그가 땅에서 묶으면 하늘에서도 묶이는 복을 주셨다. 그의 고백 때문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이런 복을 주셨으면 좋겠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고백과 더불어 주님이 주시는 큰 복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런 베드로에게 주님은 23절에서 저주에 가까운 말씀을 하신다. '사단아 물러서라' 주님이 돌아가신다고 하자,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하는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다. 천국의 열쇠를 가진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니 충격적인 말씀이기도 하다.
사실 베드로의 동기는 순수했다. 선해 보인다. 스승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야망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이다. '사단아 물러서라' 주님의 말씀은 복음이고, 축복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떠한가? 저주인가 축복인가?
주님의 말씀은 저주의 모양을 하고 있을지언정, 복음이다. 특히 '천국의 열쇠'를 가진 사람에게 이 말씀은 약이 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별하지 못하는 자에게 천국의 열쇠는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나 천국을 열어 줄 수 있다. 자기 마음에 들면 열어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공평하지 못하다. 따라서 천국의 열쇠를 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편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일하는 것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베드로가 항상 해야할 질문은 '이것이 하나님의 일인지, 사람의 일인지'' 분명히 아는 것이다. 주님의 저주 같은 이 말씀이 베드로를 항상 깨어있게 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베드로에게 약이 되고, 축복이 되는 말씀이다. 주님의 꾸짖으심도 축복이다.
베드로에게 주신 역설은 지금도 진리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고는 사람의 일을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게 되고, 주를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찾게 된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이다. 주를 위해 목숨을 잃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27절은 해석이 분분할 수 있다. 주님의 재림에 일어날 일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주님이 부활하신 이후의 모습일 수도 있다. 주님이 천사들과 오신 때는 부활하시고 오신 모습이기도 하다. 28절은 17장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변화산 속에서 변형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이야기 일수도 있다.
또한 우리가 얼마나 천국에 대해 알지 못하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1)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적을 요구하는 바리새인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
(2) 오병이어 기적으로 5천명을 먹이신 기적과 떡 일곱개로 4천명을 먹이신 사건.
(3) 베드로의 고백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이다. 이 고백에 주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 천국의 열쇠를 준다고 하신 일.
(4)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후 죽임을 당하셨다가 제 삼일에 살아나신 일들.
베드로의 반응과 예수님의 반응. 예수님의 역설에 대한 나눔에 대해 이야기가 나누어져 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기 원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주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수 많은 표적을 보면서 여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어떤 기적을 보아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기적을 보았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기적을 경험했다고 믿음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선물인 셈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아도 믿음이 생기는 않는 세대. 그 세대의 마음은 악하고 음란한 것이다. 믿지 않으려고 작정한 사람에게는 어떤 기적도 믿음을 주지 못한다.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을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오천명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천명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행하신 기적이다. 예수님의 주님의 능력을 잊어버린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신지를 말씀해 주신다. 또한 이 말씀은 주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자손 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배불리 먹이실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적인 배 고픔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시는 분이 에수님이라는 내용이기도 하다. 주님의 말씀은 온 세상 사람을 다 먹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에 뭔가를 덧붙이기를 원한다. 예수 믿으면 성공하고, 예수 믿으면 건강하고.. 예수 믿으면 모든 일이 다 잘 풀린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이것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두고 하신 누룩이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 복음이다. 주님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른가?
베드로의 고백은 주님의 칭찬을 이끌어낸다. 시몬 베드로에게 주님은 '천국의 열쇠'를 맡기시는 복을 주셨다. 그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고, 그가 땅에서 묶으면 하늘에서도 묶이는 복을 주셨다. 그의 고백 때문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이런 복을 주셨으면 좋겠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고백과 더불어 주님이 주시는 큰 복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런 베드로에게 주님은 23절에서 저주에 가까운 말씀을 하신다. '사단아 물러서라' 주님이 돌아가신다고 하자,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하는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다. 천국의 열쇠를 가진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니 충격적인 말씀이기도 하다.
사실 베드로의 동기는 순수했다. 선해 보인다. 스승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야망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이다. '사단아 물러서라' 주님의 말씀은 복음이고, 축복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떠한가? 저주인가 축복인가?
주님의 말씀은 저주의 모양을 하고 있을지언정, 복음이다. 특히 '천국의 열쇠'를 가진 사람에게 이 말씀은 약이 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별하지 못하는 자에게 천국의 열쇠는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나 천국을 열어 줄 수 있다. 자기 마음에 들면 열어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공평하지 못하다. 따라서 천국의 열쇠를 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편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일하는 것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베드로가 항상 해야할 질문은 '이것이 하나님의 일인지, 사람의 일인지'' 분명히 아는 것이다. 주님의 저주 같은 이 말씀이 베드로를 항상 깨어있게 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베드로에게 약이 되고, 축복이 되는 말씀이다. 주님의 꾸짖으심도 축복이다.
베드로에게 주신 역설은 지금도 진리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고는 사람의 일을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게 되고, 주를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찾게 된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이다. 주를 위해 목숨을 잃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27절은 해석이 분분할 수 있다. 주님의 재림에 일어날 일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주님이 부활하신 이후의 모습일 수도 있다. 주님이 천사들과 오신 때는 부활하시고 오신 모습이기도 하다. 28절은 17장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변화산 속에서 변형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이야기 일수도 있다.
또한 우리가 얼마나 천국에 대해 알지 못하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