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본문은 ‘믿음을 산다’는 의미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예 입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앉은 뱅이로 살아야 했던 한 사람을 고친 후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비록 착한 일을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했다는 죄목으로 대제사장의 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재판을 통해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도 전하지도 말라는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인생인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삶이 순조롭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즉 착한 일을 해도 욕 먹고 비난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조차도, 여전히 힘든 일들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의 찬사가 그리울 정도입니다. 그럴 때마다 생기는 의문이 이것 아닌가요?
이렇게 살아야 되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말입니다.
YWCA를 설립한 로렌 커닝햄의 책 ‘벼랑 끝에 서는 용기’라는 책에서, 로렌은 ‘믿음’을 이렇게 정의 했습니다. “믿음이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아무 것도 없지만 필요한 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로렌의 말한 믿음은 히브리서 11장 1절과 유사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아무 것도 없지만 필요한 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한 로렌은 믿음을 이렇게도 정의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강한 확신으로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해결할 수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 믿음에 대한 기술은 히브리서 11장 6절을 다시 풀어 쓴 것입니다.
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강한 확신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23절을 보시면, 베드로와 요한의 선교 보고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어떤 반응이었지요?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시편 2편을 인용하고, 그 내용이 약간 변형된 것 입니다. 시편 2편 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믿음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처한 어려움을 주님께 그대로 아뢰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강한 확신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9절입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 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무섭고 험악한 세상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용기는 또한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으로 이 땅을 살기 위해서는 주님이 주시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30절입니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따라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이 땅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이 기도하자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31절 말씀이지요.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그렇습니다. 험한 세상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주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받아 살아가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주님이 주신 능력이 있으면 우리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어려움을 없애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어려움 가운데 지나가도록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어려움을 뚫고 지나가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성경 전체에서 발견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 그 곳에는 아무도 없는 땅이 아니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고 주신 땅이었지만, 그 땅은 정복해야 되는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보다 훨씬 강한 군대와 튼튼한 성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누구나 쉽게 정복할 수 있는 땅이 아니라, 강한 군대가 와도 정복하기 힘든 땅이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제대로 군사 훈련도 되어 있지 않은 오합지졸에게 그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시키신 훈련은 예배자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훈련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주님이 예수를 주로 믿는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주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이런 고민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의 어려움은 믿는 자들에게 기도하게 하시고, 자신의 연약함과 두려움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어떻게 보면, 어려움이 주는 유익함입니다. 또한 이것이 성도들이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사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의 결국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안다는 것은 그 분과의 관계가 더 깊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를 알아갈 때 더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의 결국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진 것,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우리 자체를 더 소중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제거하시지 않는 이유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크든지 작든지, 이 땅의 삶에서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사람들이 얻게 된 것은 용기며 능력이지만, 사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주님과의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배워야 했던 것도 하나님과 깊은 친밀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서 주님과 더 깊은 관계 속으로 거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있었던 핍박이 믿음의 사람들을 더욱 주님과 깊이 있는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오늘 본문을 통해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의 결과가 교회의 영적인 부흥입니다.
교회 안에 여러가지 어려움에 있다고 해도,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그 시간을 믿음으로 살면 우리가 더욱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정이 어려울 때 더욱 친해질 수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면 더욱 깊은 관계 속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음을 믿으며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본 사람들의 믿음은 자라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들, 또한 하나님과 깊은 친밀함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임하는 축복은 사람들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람들이 스스로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욕심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것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이 자신들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믿음이 있으신가요? 작은 교회 목사만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32절처럼 할 수 있었던 이유를 34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예전에는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보니까,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주님이 내 삶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면 풍성해 집니다”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고, 나의 주장을 포기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눔으로 형제, 자매들의 근심이 덜어졌고, 나아가 이웃과의 관계도 깊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게 되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 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회복되고, 나아가 그 관계가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하고 있는 아웃리치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비전트리를 지원하고, 선교사들을 돕는 일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우리가 힘이 많아서, 능력이 뛰어나서, 우리가 재정적으로 넉넉해서 이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런 일들은 가진 것이 많다고 할 수 있는 성격의 일도 아닙니다.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고, 우리가 잘나서 하는 일은 더욱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 십년 동안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고 싶으신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우리가 우리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시고, 또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동안, 때를 따라 돕는 사람들을 보내주시고, 때를 따라 필요한 재정을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맛보았습니다.
두번째는 이 일은 결국 이웃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는 것을 배우는 과정 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말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일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않는 사람들도 어려움이 생기면 원인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없애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믿는 무리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결과는 주님과의 깊은 교제로 이어저야 하고, 나아가 이웃과의 깊은 교제로 이어져야 합니다. 상투적인 교제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여는 교제가 필요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돕는 그런 교제가 필요합니다. 그 일이 오늘 본문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는 일 말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의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에서 주님이 하시는 일들을 보고 경험하시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을 통해 이웃 사랑이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웃과의 좋은 관계는 평화입니다.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는 평화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처럼 우리 삶이 믿음으로 시작해 믿음으로 마무리 되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