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꾸짖으신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14절을 보시면,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이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행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 우리 안에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믿음입니다. 제자들 안에 주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그들은 주님이 말씀하신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이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주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복음을 전파할 수 없습니다.
둘째.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받으신 분입니다. 그 분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우리는 복음을 전파할 수 없습니다.
셋째. 우리 안에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기쁨이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에게 주님을 잃은 슬픔으로, 미래에 대한 답답함으로 가득했다면, 그들은 복음을 전파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을 아는 기쁨 대신 슬픔 뿐이라면, 어떻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 안에 주님을 만난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쁨이 우리 안에 회복되고, 샘 솟듯한 기쁨이 있어야 우리는 복음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주님의 복음이 가득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마음 안에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주님의 성령이 우리 각자의 마음에 믿음을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마음으로 가득채워 주시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의 기쁨이 우리 안에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 복음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는 ‘복음’이라는 단어입니다. 복음은 다른 말로 기쁜 소식입니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에게 복음은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복음은 병이 낫는다는 소식입니다. 배 고픈 이들에게 복음은 배 불리 먹는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눈이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영의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 복음입니다. 죽게 될 사람이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 복음입니다. 영적인 배 고픔에 있는 사람이 배불리 먹이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 복음입니다.
1990년 가을. 제가 유난히도 외로움을 탓습니다. 예전 보다 아는 사람은 훨씬 많아졌습니다. 그럴 수도록 저는 더욱 더 외로웠습니다. 이 외로움은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갈 수록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잘 쓰지도 않는 일기장에 이렇게 일기도 썼습니다.
‘나의 친구는 누구인가, 나는 친구가 있는가?’ 그리고 어디에선가 읽었던 글의 내용을 쓰면서, 친구란 이런 것이다 라는 장문의 글을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제가 친구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친구다. 그렇다면 나는 친구가 있는가? 내 친구는 누구지?’ 그리고는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 올려 봤습니다. ‘이 놈이 내 친구가? 글쎄 이 놈은 아닌 것 같아… 그리고 나는 이들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자신은 없었습니다. 친구가 없다! 그래서 답답했고, 외로웠습니다.
그런다가 생일이 가까웠습니다. 대학와서 학과 동기들이 제 생일 축하한다며 저를 불러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친구들하고 생일 파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촌놈이 출세한 것입니다. 보통은 생일날 미역국 먹는 것이 전부여서, 생일이라고 그렇게 들 떠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향 떠나 지내는 낯선 땅에서, 과 동기들이 제 생일을 챙겨준다는 사실에 고마웠습니다. 음식점에 모여 밥도 먹고, 생일 노래도 불러주었을 겁니다. 그런데 생일 파티가 끝난 후에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저랑 다른 사람이 함께 생일 파티를 했는데, 동기들이 다른 사람에게만 선물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들러리? 저는 그냥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음식값 내고 기숙사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생일 축하야!’ 그리고 ‘누가 내 친구지?’ 이런 생각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그런 중에 읽게 된 소설책이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책입니다.
그 책 속에 제가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친구. 그것도 진짜 친구였습니다.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아니 실제로 나를 위해 죽어버린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그렇게도 친구를 찾아 헤매던 제가 찾은 친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복음을 들은 것입니다. 주님이 나의 친구가 되신다는 기쁜 소식.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의 사랑을 들은 것입니다. 언제나 제 옆에 친구로 계셨는데, 그 친구를 제가 못 알아봤던 것입니다. 친구가 고픈 제게 복음은 나를 사랑해 주시는 친구되신 주님이셨습니다. 그 친구를 만나면서 제 삶은 변해 갔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기쁜 소식은 안에 담아 둘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기쁜 소식은 누군가에게 꼭 나누고 싶어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기쁨을 경험한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사야 61장 1-3을 보세요. 주님의 복음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상함도, 우리의 포로됨도, 우리의 갇힘이 치료되고, 자유케 되고 놓이게 된다는 소식입니다. 우리의 슬픔도, 우리의 근심도, 우리의 수치도 주님 안에서 기쁨이 되고, 찬양이 되고, 우리의 자랑이 된다는 복음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나와 있는 주님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하나님이 누구시며,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황송하고, 얼마나 기쁜 소식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저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저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오래 참아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복음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친구이십니다. 예수는 우리의 신랑이십니다. 예수는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예수는 우리의 의사되십니다. 예수는 우리의 산성이요, 요새이시며, 우리의 방패가 되십니다. 예수는 우리의 왕이며, 우리는 그의 종입니다. 그 예수를 전파하라는 것이 주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모양으로 전해야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이것이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의 명령은 11명의 제자들에게 먼저 주신 것입니다. 11명의 제자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명령은 모든 교회에게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몸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님이 하신 명령이 오늘 본문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라’
지체된 교회는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많은 교회들이 있는 것은 그 교회마다 역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들은 주님이 맡겨주신 일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전하는 것. 예수를 전파하는 것. 이것이 주님이 우리 모두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보실 때 어떤 교회인가.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제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깨닫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강점. 우리가 잘하는 것 하자는 것입니다.
수요 모임 때 나누었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지으실 때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신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각자가 잘하는 것, 그들이 좋아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성소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기쁨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시키셨습니다. 일은 책임감으로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기쁨으로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잘 하는 것 합시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각자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기를 기도합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할 일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에 보면, 복음은 어떤 사람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십자가에 힘없이 죽은 예수를 믿는 것은 미련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전 1:18).
우리가 하는일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수를 전하는 일입니다. 그 다음은, 주님이 알아서 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의 열매가 무엇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조하문이라는 가수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주의 열매는 하루 아침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그가 2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에 깨달은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품고 살았던 사람, 주님의 복음을 받아 들이고, 주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인생의 열매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고, 부러움의 대상이던 연예인들이 25년이 흐른 뒤에 보니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보았다고 그가 증언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우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답답함, 그것을 뚫어주실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든지 주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되는 사람은 인종,지역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복음을 만민에게 전해야 합니다. 먼저는 우리 자신에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에게 주님의 복음이 날마다 새롭게 다가오시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만났던 사람, 복음을 먼저 들었던 사람으로서, 기쁨으로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