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있는데, ‘회개하라’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성경을 보면 죄의 고백과 회개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세례 요한이 사역을 시작하면서 했던 메세지가 바로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나중에 몇 가지 성경 말씀을 더 읽어드리겠지만 회개와 죄의 자백이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회개’라는 말은 교회에 왔으니까 듣는 말이기도 합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회개’하라고 말해 주겠습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여러분에 옆에 있다면 행복한 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되라고 하는 마음으로 말해주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비록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불편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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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는 말을 들으면 사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회개 기도를 하려고 하는데 별로 회개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그렇습니다. 또한 무엇을 회개해야 될지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회개할려니, 억지로(?) 회개할 것을 만들기도 합니다. 자아 비판도 해 봅니다. 하나님께 뭔가 잘못은 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를 때가 있어서 입니다.
회개라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죄 스런 생활 태도에서 탈피하여 신께 귀의 하는 일을 말한다. 옛날에 저지른 잘못을 뉘우친 사람이 그 잘못을 고치고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힘을 쓰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회개는 하나님을 돌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죄는 하나님의 뜻으로 부터 벗어나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죄의 근원도 하나님께로 부터 벗어나 있으면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에 나오는 내용들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는 거울이 됩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이유도, 우리의 죄악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회개의 의미를 명확히 보여주는 성경 구절이 역대하 7장 14절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회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한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한 길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악한 길에 서 있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이 악한 길이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회개는 스스로 낮추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았다고 스스로 자신들을 높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라는 자긍심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자긍심으로 무할례자들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이 할례를 주신 이유를 다 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에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할례의 의미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죽었고 이제 부터는 내가 일하겠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권으로 여기고 스스로 높였습니다. 회개는 스스로 낮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개는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서 있는 죄의 자리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다시 한 번 역대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회개가 뭔지 말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을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 밖에도 죄의 자백과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성경 구절들이 많이 있지만 몇 가지만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잠언 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눅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요한 1서 1:8,9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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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말씀들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살게 해 주세요. 또는 이렇게 살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하나님 이런 부분은 잘못된 것 같아요. 마음에 찔리는 부분이 있으면 하나님께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기를 다짐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저희들이 하는 회개기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회개 기도한대로 여러분의 잘못을 고치셨나요? 잘못된 습관이나, 하기 싫은 것들을 멈추게 되셨나요? 만약 그랬다면 참 잘 된 일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시길 바랍니다.
그렇지만 반면 회개 기도만 하고 말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회개 기도는 참 열심히 하는데 그게 행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의지가 얼마나 약한지를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잘못된 점. 또는 죄 라고 알면서도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이고, 나약함이고, 나아가 죄성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인데, 원래 죄인의 자리로 되돌아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 기도는 하지만, 행위가 뒤 따라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찬양에 우리가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게 사랑을 가르치소서. 당신의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주의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 마음 주소서”
주님 앞에서 우리가 섰을 때 할 수 밖에 없는 고백이 바로 이것입니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은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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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텔렌트 중에 최강희 라는 자매가 있습니다. 이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이 자매의 이미지는 밝고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매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굉장히 밝고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하는데, 방 안에만 들어보면 손이 떨리고 눈물이 많이 났다고 합니다. 어릴 적에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더 살아야 하지? 자매에게 죽음이 소망이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자매는 자살하려고 했던 적도 있다 라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보일까 걱정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없거나 혼자 있을 때는 울거나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예배 시간이었다고 해요. 이 자매 말로는, 자신은 모태 신앙인데 어릴 때부터 효도 차원으로 교회에 나갔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항상 자기를 위해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째든 습관을 따라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좀 특별했다고 해요. 예배 시간 내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람들이 통성으로 기도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런 말이 나왔다고 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기도도 아니고 탄식처럼 했던 말이었다고 하는데요. 자매는 이런 자신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것 같다고 말합니다. 또한 속으로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해요. ‘술 먹고 싶으면 먹을께요. 그런데 그냥은 마시지 않을게요. 담배 피우고 싶으면 피울께요. 그런데 그냥은 피우지 않을께요.’ 술 먹고 담배 피우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자신이 술과 담배에 묶여 있는 것 같아서 싫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했지만, 이 자매에게 무슨 일이 금방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술을 마시다가 한 잔 더 마실까 하는데 그냥 마시는 거네 하는 생각이 들어 멈췄다고 합니다. 담배를 피우다가 그냥 피우네 하면서 담배를 안 피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자연스럽게 술과 담배를 안하게 되었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게 술도 담배도 다 끊어버리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전에도 술을 끊고,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했지만 안 되던 일이, 어느날 갑자기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매가 느끼게 된 것이 ‘자유’라고 합니다.
우리의 의지로 안되는 것이, 어느 순간에 자연스럽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짧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게 회개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을 얻는 회개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얻는 회개를 이 자매가 경험한 것입니다. 인간은 못하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하신 수 있는 일 말입니다.
18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회개는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자매가 경험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게도 이런 간증이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얻는 회개가 하나님이 내게 주셨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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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에게 고넬료의 집에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할례자가 무할례자의 집에 가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따지자, 베드로가 다시 한 번 고넬료에 집에 가기 전까지의 일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세 번이나 사도행전에서 반복되고 있는데, 그 만큼 그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적이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보고를 들었던 사람들이 반응을 보면 이들에게도 생명을 얻는 회개가 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할례자로 무할례자의 집에 가는 것이 죄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굴복했습니다. 이것도 바로 회개입니다. 내 뜻을 꺽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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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야기로 오늘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제가 꿈을 꿨는데요. 꿈 속에서 제가 어떤 건물을 열심히 지었습니다. 멋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어떤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불에 다 타 버렸습니다. 아무 것도 안남아서 속상했습니다. 근데 꿈이니까 금방 또 집을 짓습니다. 그러다가 잠에서 깼습니다. 원래 꿈 내용을 잘 기억하지 않는데 이게 뭐지 이러면서 기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옛 것은 태워서 없애야 새것을 짓는구나 라는 해석입니다. 꿈보다 해몽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가 설교할 때 고넬료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도들은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라고 말합니다. 성령은 불로 표현됩니다. 이 불은 죄를 사하는 정결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성령은 우리로 생명을 얻는 회개를 하게 하십니다.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살 길입니다. 회개하는 사람들이 생명을 얻는 사람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가정이 살아나는 가정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교회가 생명을 얻는 교회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국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국가입니다.
우리가 회개를 하는 목적은 생명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생명을 얻는 회개를 하나님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