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따라서 믿을만한 사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입니다. 또한 누군가 우리를 믿어준다는 사실이 때로는 고맙고 힘이 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인터넷으로 쓰던 물건을 팔려고 광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광고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연락하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랬습니다. 자기에게 꼭 팔라고 전화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고민하다가, 가장 먼저 연락을 해 온 사람에게 물건을 팔기로 결심을 하고, 그 사람과 연락을 주고 받았습니다.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믿어도 될까? 내가 돈을 수표로 보내는데 말이지….수표 금액 중 일부는 다른 사람에게 보내야 되는데, 너를 믿고 그 돈을 보내도 될까? 라고 거듭 확인했습니다. 그 편지에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연하지.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이야.” 라고 말입니다.
나중에 그 사람이 보내 준 수표에 적힌 금액은 물건 값의 4배 정도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보낸 수표를 은행에 입금하고, 그 중에서 얼마는 누구에게 빨리 보내야 된다는 당부와 함께 말입니다. 수표를 보낸 사람이 텍스트로 돈을 보내야 한다고 하도 졸라서 제가 물었습니다. ‘왜 내가 당신 일을 해야 하나요?” 그러자 “자기는 지금 너무 바쁘답니다. 미안하지만 자기 대신 이 일을 도와주면, 사례비도 준다고 제안했습니다. 오호라! 저를 믿고 보낸 돈이니, 자신의 믿음을 저버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생전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을 너무나도 신뢰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이상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사람은 인터넷에 나온 광고를 보고 사기를 치시는 놈이었습니다. 나를 믿는다고 말했지만, 저의 어리석음을 믿고 자신의 놓아둔 덫에 걸리기를 바라는 사기꾼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믿음을 가지고 장난 치는 나쁜 놈이었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우리를 믿어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우리를 믿어줄 때는 의심해 봐야 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역으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보증 수표 처럼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 가정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믿어주고, 아내가 남편을 믿어주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믿어주고, 자녀들이 부모를 믿어주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만약 남편이 아내를 믿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누굴 만나지. 어딜갔지. 지금 뭐하지. 의심의 의심을 하다가 아내를 도저히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믿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남편이 만나는 사람마다, 의심의 눈초리로 보낼 것입니다. 저 인간이 언젠가는 바람을 필거야 하면서 말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믿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또한 평화로운 가정과는 거리가 멀 것입니다. 서로 믿지 못하면, 서로 의심하다가 정신과 영혼이 상하고 몸도 상하게 됩니다.
믿음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믿음이 있다는 말, 믿음이 간다는 말은 우리 자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모두가, 믿음의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믿지 못하는 제자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접한 제자들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처음으로 만났던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제자들은 믿으러 하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상식과 경험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제자들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라는 기대가 전혀 없었습니다. 믿음 없는 제자들. 그 제자들을 다시 만난 주님이 그들의 믿음 없음과 마음이 완악해 져 있음을 꾸짖으십니다.
주님이 누군가를 꾸짖을 때는 믿음 없음과 마음이 완악해져 있을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이 누군가요? 예수님과 3년이상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직접 훈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직접 보고 들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에 대해 들었던 사람입니다. 이 뿐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을 보았던 사람이고, 예수께서 죽은 아이를 살리신 것을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주님이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은, 자신이 믿을만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밝히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 믿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첫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다고, 모든 이들이 믿음에 이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바다가 열리는 기적을 보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기도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시고, 모든 일이 형통케 되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반대의 경우도 허다 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오히려 마음이 강팍해졌던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올 때, 수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지만, 애굽 왕의 마음은 더욱더 강팍해 졌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본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어떤 사람의 믿음은 견고해졌지만, 어떤 사람은 예수를 죽이기로 결심 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과 3년 동안 함께 살았지만, 그들의 믿음은 예수의 부활을 믿는 것까지는 자라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교훈은, 믿음은 항상 현재형입니다.
예전에 믿음 좋으신 분은 참 많습니다. 예전에 교회 열심히 다녔다는 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추억이라고 하지 믿음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현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자들이 예수님 믿었지만,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과 죽음 앞에 그들의 믿음은 약해져 버렸습니다. 주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지는 못했습니다. 믿음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나의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올 해 부터 일본 선교사들에게 한 달 한 번 식사를 대접하자며 시작한 일이 있습니다. 이름하야, 미셔너리 테이블. 한국말로 번역하면, 선교사의 밥상 정도면 좋을 듯합니다. 이번 달에도 여러 가지 음식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보냈습니다. 선교사님께 잘 받았다는 편지를 받았는데요. 멤피스 한인 교회 성도님들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곳 선교사님과 선교사 후보자들이 도대체 ‘멤피스 한인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궁금하시다고 내용도 있었습니다. 일본에 오게 되면 교회에 방문해 달라고 초청도 해 주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우리 교회는 작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손과 같은 지체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되시는 여러분을 섬기는 지체”라고 말입니다. 답장 잘 썼나요? 우리는 주님의 손과 같은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선교사가 보내온 편지 속에 항상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기도 내용들이 있습니다.
1.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2. 전도의 문을 열어주소서. 이런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은데, 그들을 가로 막고 있는 현실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일용할 양식입니다. 어제도 잘 먹었고, 오늘도 잘 먹었고, 내일도 잘 먹을 것입니다. 선교사들에게 필요한 믿음은 자신들을 먹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교사 뿐 아니라, 우리의 기도 내용이고,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내용이기도 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이 기도 속에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이 주님이시라는 믿음의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 믿음이 우리 삶 가운데 매일 생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불안해하고 초조한 나날을 보낼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매일 매일 필요합니다.
선교사의 밥상이 선교사와 그의 가정. 그리고 선교사를 꿈꾸는 청년들의 믿음이 자라는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도 이 일을 통해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세번째 교훈은, 믿음의 기능입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바라는 것들을 보게 하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던 많은 일들은 제자들의 상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바다 위를 걸으시는 주님, 물고기 두개와 떡 다섯개로 수 천명을 먹이시는 주님, 말씀 한 마디로 병을 고치시는 주님, 예수님의 옷깃만 스쳐도 병이 낫는 일들. 벙어리가 말하고, 귀 먹은 사람들이 듣게 된 일. 모두 다 우리의 상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지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다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제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우리의 상식과 경험을 뛰어 넘는 것들 투성입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은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들입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들. 우리가 살면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믿음을 작동시켜야 합니다.
누구에 대한 믿음? 주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그 동안 보여주셨던 것들에 대한 신뢰. 그리고 앞으로도 동일하게 우리를 돌보시고 계신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믿음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주님이 허락하시면 우리의 상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일들이 지속적으로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작동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동안 필요한 믿음은, 주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이며, 주님이 우리 인생을 돌봐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이 우리 자녀도 책임져 주시고 돌봐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배워야 할 네번째 교훈은, 믿음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전적으로 믿어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배반하고 죄를 범하더라고, 우리가 회개하면 언제든지 우리를 두 팔 벌려 받아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믿어주기를 바라십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을 꾸짖으시는 주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주님의 마음. 즉 자신이 믿어준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아서 생기는 속상한 마음입니다. 믿음을 줬지만,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한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 그 마음 때문에 제자들을 꾸짖으신 겁니다.
주님이 우리를 믿어 주시고, 우리에게 당신이 믿을 만한 분이시라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분을 믿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주님의 마음을 읽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주님은 속상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마음을 알았다면, 우리가 주님을 믿어드려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을 믿어 드리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 약속하신 것. 그것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믿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주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마음을 믿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3. 믿음의 결국은 구원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못박히 손과 허리를 보고서야 예수를 믿게 됩니다. 예수께서 40일동안 승천하시기 까지 제자들과 함께 하신 것도, 제자들에게 예수 부활하심을 분명히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믿음 없음으로 인해 주님의 책망을 받았던 주님의 제자들. 그들은 나중에 성령을 받은 후,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 중에 베드로가 쓴 편지의 내용을 보면, 믿음의 결국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내용이 나옵니다.
베드로전서 1장 3-9절 말씀입니다 (현대인의 성경).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시다.
그분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살 희망을 갖게 하셨으며,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하늘에 간직한 축복을 여러분이 받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나도록 예비된 구원을 얻기 위해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련으로 잠시 근심할 수밖에 없으나 그래도 여러분은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시련을 겪은 순수한 믿음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나 사랑하고 있으며 지금도 보지 못하지만 그분을 믿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영혼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순수한 믿음은 나중에 주님께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의 결국은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믿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믿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너무 조급해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님을 믿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